원래 나는 내가 잘못한 것에 대해 야단맞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매 맞을 짓을 했다면 맞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 잘못에 대한 이야기로 야단치는 것은 그게 고쳐지지 않는 한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이어져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계속 아무 소리 안하고 그냥 듣는다.
그런 건 그다지 큰 스트레스가 아니다. 그건 내가 잘못한 것이 대한 당연한 벌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걸 못 고치고 계속 그러고 있는 나에 대한 반성과 자책과 스스로에 대한 스트레스는 쌓이지만.)
그렇지만 거기에 내 잘못에 대한 문제만으로 화를 내시는 게 아니라 본인(당신)의 스트레스, 짜증, 화 등을 밀어넣어 밑도끝도 없이 난데없이 갑자기 아무런 전조도 없이 소리지르며 터뜨리시는 건 내가 감당하기 힘들다.
상대가 부모님이라 하더라도, 나는 내가 잘못한 것에 대한 부분만 잘못한 만큼만 혼나는 게 당연하다 생각할 뿐이지 그 이상, 그 외의 것에 대해서는 수용이 불가능하다. 이해도 할 수 없다. 왜 다른 데서 쌓인 스트레스를 나한테 푸나.
요즘의 어머니는 스킬이 느셔서, 이런 부분에 대해선 날 잘 파악하셔서, 내가 잘못한 것에 대한 이야기엔 내가 아무 말 없이 그냥 야단맞고 있으니까 당신의 스트레스나 짜증이나 화 같은 것을 나한테 야단치면서 풀고 계신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과 함께 조곤조곤 대화해본 적이 없는데다 집안 분위기도 그런게 불가능한 분위기, 환경이어서 내가 많이 노력하는 편인데(내가 먼저 화제를 꺼내서 이야기를 혼자 시작하지 않으면 우리 집안 사람들 그 누구와도 대화는 불가능하다), 요즘은 무슨 말이든 뭔 말을 하기가 싫고 꺼려질 정도다. 무슨 말이든, 내가 무슨 말만 꺼내면 바로 그 뒤를 이어 내가 한 이야기에 대한 대꾸, 대화가 이어지는 게 아니라 무조건 최근 야단맞는 레퍼토리만 반복되기 때문이다.
돈, 직업, 운동. 이 세 가지. 오직 이 세 가지. 그 어떤 화제라고 하더라도 무조건 이 세가지 레퍼토리로만 대꾸가 나온다. 그리고 그건 야단맞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제 더 이상은 아무 말도 하기가 싫다. 대화가 끊긴지가 오래다. 그래도 꽤 오래 노력해봤지만, 이젠 못하겠다.
어제 낮에 갑자기 왼쪽 하악골, 하악관절이 아프기 시작하더니 턱을 제대로 못 움직이게 되었다. 뭣 때문에 그런 건지 알 수 없어서 당황한 채 하악관절을 만지다가 그냥 냅두고 상황을 지켜봤는데, 점점 더 붓고 열나고 굳어가서 입을 거의 못 열 지경이 되었다.
이를 닦기 위해 칫솔을 넣는 것도 겨우겨우, 칫솔질도 무척 힘들게 했다.
어머니께서는 볼거리 하는 거 아닌가 하시면서 내일 병원을 가봐라, 하셨는데, 그래서 오늘 희진 아씨 만나러 나가는 길에 병원에 들렀다.
무거동 굴화주공 아파트 단지에 있는 과일가게 건물 2층에 있는 정희승가정의원. 일전에 감기 때문이었던가, 거기 갔었는데 내 병원생활 처음으로 "알러지 반응 일으키는 약물이 있습니까?" 하는 질문을 들었던 병원이라 이젠 아예 왠만하면 거기로 간다. 치과나 안과 같은 문제가 아니면.
갔더니, 과연 의사 선생님은 바로 진단 들어가시면서 나와 어머니의 추측을 간단하게 웃으며 부정하시고 뒷골, 턱, 목, 등을 마사지하기 시작하셨다. 꾹꾹 누르고 잡아 당기는데 아파 죽는 줄 알았다. 근데 그게 평소 같으면, 정상적인 사람들은 만져도 하나도 아플 일이 없는 근육들이란다.
일단 진단명은 TMJS. 말하자면 하악관절증후군...이랬던가. 그니까 하악관절장애다. 지금 난 그게 저작근쪽이랑 LO뭐시기랑 GO뭐시기랑 또 어디 뭐시기에 문제가 생겨서 근육이 뭉쳐서 끈처럼 땅땅해지고 측골에서 후두골지나 머리 꼭대기를 넘어 이마 아래 눈썹있는 곳까지 내려오는 근육이 모조리...... 그래서 지금 긴장성두통까지 함께하고 있는 거란다.
이게 갑자기 이렇게 된 원인이, 스트레스.
왼쪽 턱이 갑자기 굳어서 안 벌어지고 붓고 열나고 안 움직인다, 라고 말하자마자 턱이랑 뒷쪽 근육 만져보시더니 "요즘 스트레스 심하게 받은 일 있어요?"하고 물어보시더라.
스트레스야 언제나 받고 있지만 요즘 유난히 어머니께서 심하게 쪼고 계셔서 무슨 말도 못하고 뭐 맘 편히 먹지도 못하고 하여간 눈만 마주치면, 마주치지 않아도 거실에서 소리 지르시니 뭐 한 집에 같이 있으면 피할 수도 없고, 하여간 그런 상황이라... 새삼스럽단 생각이 들긴 했어도 최근 점점 더 강도가 심해진 건 사실이니 뭐 그게 스트레스라면 스트레스지. 내 일에 대한 문제는 새삼스레 "요즘의 스트레스"로 등극할 일은 아닌 듯하고. 글에 대한 거나 돈에 대한 건 나도 항상 스트레스긴 하지만.
그냥 간단하게 "네... 뭐......" 하고 대답하고 앉아서 어디가 어떻게 문제가 있는 것인지 해부도까지 들여다보며 자세히 설명 들었다.
세세하게 설명해주시면서 상담까지 겸하는데, 스트레스의 원인에 대해 파헤치시는 모양이었다. 그냥 자세히 말할 거 있나 싶어 간단하게 질문에 대한 대답만 짧게 짧게 했는데 겨우 그거 말하고도 안에 있는 내가 울컥한 모양인지 눈물이 치솟아 안 멈추는 거다.
의사 선생님이 너무 담담하고 친절하게 이야기를 잘 해주시고 신경을 많이 써주시면서 격려도 많이 해주시고 달래주시고 그래서 아놔 진짜 울 생각은 없는데 눈물이 안 멈춰;; 눈물콧물 다 뽑아냈다;
오늘 희진아씨 만나 같이 놀 거라고 화장도 곱게 하고 나오자마자 병원 가서 펑펑 우는 바람에 얼굴 다 망가지고...;;;;
이런 젠장, 생각만 해도 또 눈물이 치솟아;;;
콧잔등이 다 헐 정도로 울어대서(엉엉 운 건 아니고 눈물을 너무 흘려서 콧물도 잔뜩;;) 30분 정도 지나 병원에서 나와 희진아씨 만났을 땐 얼굴도 엉망, 콧잔등도 엉망...;;
의사 선생님이 이런저런 이야기 짧게 해주시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거리를 유지한 그대로 격려를 해주셔서, 그래서 반발심이나 경계심 없이 받아들여진 것 같다. 친하지도 가깝지도 않은 사람이 거리도 없이 성큼 들어와서 이런저런 이야기하면서 격려랍시고 해봤자 좋게 들리지 않는 법인데 그걸 잘 알고 계시는 것 같다. 나중에 하시는 말씀이, "~해서, 제가 좀 돕고 싶은데......" 하면서 뜸을 한참 들이시는 거다.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그러시나 하고 나도 의아해하면서 한참 기다렸더니, 약 처방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제야 알겠더라. 처방약이 1.위약효과를 노리는 것이거나, 2.향정신성약품을 처방하는 것이거나.
그리고, 내 짐작대로였다.
희진아씨가 간호사라 만나자마자 확인 가능할 것 같았으므로 그냥 아무 말 없이 처방전 받아 약국에서 약 사서 챙기긴 했는데, 희진아씨한테 확인해보니 처방 받은 약 두 종류 중 한 종류는 확실히 향정(향정신성의약품)이란다. 나머지 하나는 애매한데, 찾아보고 알려주겠다 그러더라. 그런데 지금 막 검색해서 찾아보니, 둘 다 향정이다.
아기 때 안 앓고 넘어갔던 전염병인가 싶어 병원 갔다가 잔뜩 울고 향정을 처방 받아 나왔다. 뭐냐 이거.
나는 왠만하면 우는 게 카타르시스 기능을 동반하지 않아서(자각할 수 있는 범위 내의 감정이 움직여 우는 게 아니라) 우는 것 자체도 피로 동반 육체노동이나 다름없다. 컨디션도 확 무너뜨리고. 우는 거 자체가 스트레스.
의사 선생님 설명을 한참 듣고 나오니 원인이 뭔지 알겠더라. 어제 밤에만 해도 어머니께서 난데없이 갑자기 소리 지르며 화를 내셨었기 때문에.
어머니도 요즘 많이 힘드신 것 같다. 나랑 마주칠 때마다 화내고 짜증내신다. 앞뒤도 안 맞고. 근데 어머니랑 최소한의 대화조차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머니한테 병원 가보시란 말도 못하겠다. 어머니께선 당장 응급실 가야 할 일 아니면 나한테 어디가 아프다던가 병원에 갔다왔단 말도 안 하시는데다가 최근엔 내 얼굴 보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이신 것 같아서.
병원에서 한 번에 처방할 수 있는 약은 최대치가 정해져 있다. 복용약은 아마 일주일이 최대치이지 않나 싶다.
일주일 동안 오늘 처방 받은 약 다 먹은 후, 다음 주에 다시 병원 가야 한다. 이 상태로는 약을 4주 이상 먹어야 효과를 본다시는데...... 병원비가 되려나 모르겠다.
오늘 병원 갔다가 어머니한테 전화 와서 원인이랑 진단 말씀드렸더니 기가찬단 반응이시고, 집에 와서 "턱을 잘 못 움직여서 음식 못 씹어요. 당분간 죽 같은 거 먹어야 돼." 했더니 또 바락바락 소리지르시며 운동을 외치신다. 왼쪽 턱이 지금 이래 된 이유는 운동부족이 아니라 스트레스 때문이라더라, 라고 말씀드려도 운동을 했으면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고 어디 아플 일도 없다고 야단이시다. 더 할 말도 없고 더 말해봤자 안 들으시니 부딪치기 싫어서 그냥 방 안으로 도망쳐 들어왔다.
오늘 희진아씨랑 같이 백화점도 돌고 울대 앞 히싱라디오 가서 해물볶음밥이랑 오븐스파게티도 먹었는데, 입을 제대로 못 벌려서 음식 넣기도 힘들고, 일단 넣긴 넣어도 제대로 씹을 수가 없어서, 거의 씹지도 못하고 그냥 삼켰다. 턱을 제대로 못 움직이니 음식을 넣고도 제대로 입 안에서 굴리고 씹고 하질 못해서 맛도 못 느끼고(혀에서 미뢰가 분포된 위치가 각각 다르기 때문에 각 미뢰에서 벗어나면 그 위치의 미각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 겨우 씹으면 그 뒤로 음식이 그냥 식도로 밀려 내려가는 거다.
맛을 제대로 못 느끼니 음식을 먹고도 먹은 것 같지도 않고. 턱을 제대로 못 움직이니까 입을 제대로 열 수가 없어서 뭐 먹기도 힘들고.
병원 가기 전엔 말도 제대로 못 할 정도로 입이 안 벌어졌는데 그래도 병원 갔다오고 나니까 의사 선생님이 눈물 쏙 빠지게 마사지 잘 해주셔서 그럭저럭 말은 제대로 할 수 있을 정도로 입이 벌어지긴 한다. 그래도 여전히 뭐 먹긴 힘들지만.
혼자서도 마사지를 열심히 해야한다 하셨는데, 이게 남이 만지니까 그나마 그렇게 마사지가 되지, 내가 만지면 무지하게 아프니까 제대로 마사지를 못 한다. 그냥 좀 누르긴 하는데;; 이래 눌러서 효과가 있으려나 모르겠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스트레스 호르몬이 나온단다. 그게, 그 호르몬이 폭식을 하거나 하게 만들기도 한단다. 스트레스를 그렇게 많이 받으면 사람이 방어적으로 변하는데, 이게 방어적이 된다는 게 사람이 동물에 가까워지게 되는 거라, 먼저 살을 찌우게 된단다. 살아남기 위해서.
그래서 내가 뭔 문제만 있으면 살이 푹푹 찌는 모양이다. 안그래도 사람이라기 보다 동물적이다, 동물같다, 동물에 가깝다 소리 많이 듣는데, 괜히 그런 게 아닌 모양이다. 그런 생각이 농 반 진심 반으로 든다.
아무튼간에.
빨리 나으려면 얼른 알바든 뭐든 아버지 집에서 가까운 데서 일자리 구해서 당분간 아버지 댁에서 지내는 게 나을 것 같다.
혹시나 싶어 아버지껜 미리 지나가는 말로 그렇게 말씀드려 놨지만, 이거 진짜 본격적으로 그래얄 거 같다.
조금씩 짐 싸서 옮겨놔야겠다.
- 2009/10/13 23:21
- 배찔려도 살아있다
- kaitoma.egloos.com/1958316
- 8 comments
















덧글
2009/10/14 07:04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라히오 2009/10/14 13:55 #
사실 제가 문제의 원인인게 맞긴 맞습니다. 그러니 할 말도 없고......제가 바뀌기만 하면 된다는 것도 알구요.
어떤 의미로는 예전부터 고대하던 쫓겨나게 되면 뭐든 할 수밖에 없게 되지 않겠느냐, 그 상황인데, 음. 어떨지 모르겠네요. 깨닫기 전에 몸이 먼저 망가져서 무척 당황스럽습니다.
제 일기가 비공개님을 힘들게 한 점은 정말; 생각지 못했습니다;; 죄송해요;
2009/10/14 11:34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라히오 2009/10/14 13:53 #
오늘 일어나니 또 어제 병원 갔다온 다음 풀렸던 게 도로 말짱 헛게 되어 버렸습니다.입 안 벌어져요...... 또 이 닦는 거 엄청 힘들겠어요;
침 맞고라도 풀고 싶은 맘이야 굴뚝같지만 침 맞으러 갈돈이 없군요...
2009/10/14 14:09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라히오 2009/10/14 14:35 #
아. 그런 건가요. 아니 그런;;;괜한 이야기 하신 게 아니고;; 그럼 그건 일종의 공감인 건가요? 음, 뭐라 딱 맞아떨어지는 표현이 안 떠올라서;; 공감이라기 보다... 음;;; 하여튼 아무튼 그런 건거네요. 감사합니다. :)
2009/10/14 16:14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라히오 2009/10/14 18:32 #
그렇네요. 말은 참 어렵죠...전달되었다니 다행입니다. 음. 무슨 말인지 알겠다, 정도면 적당할까요.